너 나 할 것 없이 먼저 내리고, 먼저 타려고 몸싸움 질을 해대느라 어느새 승강구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우성치는 소리, 여자들의 앙칼진 목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두 아이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에 - 이 자리가 없잖아..... "
어른들 사이에 끼인 두 아이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온통 빼곡한 사람들의 다리만 보였습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칫하다 엄마마저 잃어버릴 것 같아
몹시 두려운 눈으로 엄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 엄 - 마..... "
조금 늦게 탄 엄마가 아이들 쪽으로 비집고 들어 왔습니다.
" 엄 - 마! 자리도 없고 숨도 못 쉬겠어..... "
" 그렇구나! 할 수 없지 어쩌겠니?
조금만 참자..... 퇴근 시간이라 더 복잡하구나..... "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하려고 엄마는 자기 앞으로 아이들을 세우며
공간을 만들어 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엄마도, 아이들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손잡이도 못 잡은 채 지하철이 움직일 때마다 이리 저리 휩쓸려야 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출퇴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한게 후회스럽지만 이젠 어쩔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 얘들아! 이 쪽으로 온..... "
" 예 앉거라! 어서..... "
두 어 사람 건너편에 노신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이들에게 손 짓을 하십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노신사 앞까지 밀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노신사가 일어난 자리에 나란히 끼어 앉았습니다.
" 아이고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앉으셔야지요.... "
" 저희는 조금만 가면 됩니다. "
" 얘들아 어서 일어나! 어-서! "
" 놔 - 두세요. 놔 - 두세요. 나도 곧 내릴 겁니다. "
" 서서 가면 운동도 되고 좋지요. "
" 그래도 힘드실 텐데..... "
손사래를 저으며 다시 한 번 자리를 권했습니다.
" 앉으세요. 어르신..... "
엄마가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눈총을 주었습니다.
" 엄 - 마! 일어나기 싫어..... "
어느새 엄마는 홍당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라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 늙은이 한 사람 대신 피곤한 두 아이가 앉으면 됐지요. "
" 요즘 아이들은 저렇게 버릇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
엄마는 연신 머리를 숙여 송구하고 민망함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 원 - ,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
" 이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법도 가르칠 수 있잖아요? "
" 말로만 사랑을 가르치면 말로만 사랑하게 됩니다. "
" 온 마음으로 사랑한대도 모자랄 판인데, 말로만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
" 아무 걱정 마세요..... "
" 그럼, 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니 조심해 가세요..... "
" 정말 고맙습니다! 어르신..... "
노신사는 더 이상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음 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전히 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새하얀 삶의 연륜이 묻어 났습니다.
종점까지 가야할 노신사는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출입문 한쪽 모퉁이에 기대서서 피곤한 눈을 감았습니다.
백발의 왕관을 쓰고 지그시 눈을 감은 노신사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 저 아이들이 내 마음을 이해 할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
서서 가는 것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 암! "
" 난 아직 젊지 않은가! "
" 이런 게 내가 해야 할 남아있는 일인 걸..... "
종점에서 엄마는 앞서 걸어가는 백발의 노신사를 보았습니다.
" 어르신..... "